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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사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부제. CBS김현정의 뉴스쇼, 탐정 손수호, 붕괴원인, 비양심, 잘못된 판단)

by 서영papa 2018. 7. 12.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기억하시나요?

 

 

 

대한민국 역사상 손에 꼽히는 사고 중의 하나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사고 당일 TV를 통해 해당 소식을 들었다. 나의 기억속에... 그날의 사고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에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못했었다. 

 

 

사고당시에는... 붕괴원인보다... 매몰된 사람들에 대한 구조소식이 더욱 절실했었다.

 

한명이라도 더 살려내기위해 애를 쓰신 분들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할 수 없으나... 나의 기억속에 분명한건... 그분들의 땀과 눈물이다...

 

 

벌써 사고가 발생한지 23년이 지났다. 어느덧 내 나이도 40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알고싶다. 왜 그렇게 무너져야 했었는지... 또 왜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는지... 

 

 

두번 다시는 우리의 기억속에 새로운 사건으로 자리잡아서는 안될 인재(人災)였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생각하니... 세월호와 최근 태국소년(선생님 포함)들 구조가 생각난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CBS김현정의 뉴스쇼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탐정 손수호 변호사님이 나오시는 날이다. 손수호 변호사님이 가지고 오신... 오늘의 주제가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였다.

 

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삼풍백화점의 기억! 붕괴 17분전 이미 이준 회장은 탈출했다!!! 

 

출처.  CBS김현정의 뉴스쇼. 탐정 손수호

 

 

 

# 사람들의 탐욕과 무질서가 만들어낸 엄청난 비극이었다. (손수호 변호사)

 

우리 역사상 최악의 건축물 붕괴사고이다. 한국전쟁 후 가장 큰 인명피해를 안긴 단일 사건이다.  

 

 

 

 

# 삼풍백화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故이준 회장이 그룹 총수로 있던 삼풍건설 그룹은 60년대에 중앙정보부 인맥으로 서울 강남에 있는 군사용지를 불하받았다. 이 땅이 개발되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7~80년대 강남에서 건설 사업을 했다. 그래서 80년대 후반에 서울 서초구에 있는 외인 주택단지 철거 부지에 삼풍아파트를 지었고, 이 아파트의 단지 내 상가 개념으로 바로 옆에 삼풍백화점을 지었다. 

 

당시 삼풍백화점의 규모는 89년도 개장 당시 단일 매장으로는 전국 2위 규모였다고 한다. 크기도 크기지만, 굉장히 고급스러운 상품들을 팔고, 이미지 자체가 상당히 고급스러운 백화점이었다. 건물안에 분수가 있었고, 강남의 큰손을 타겟으로 해외 명품브랜드를 많이 팔았다고 한다. 소위말하는 럭셔리 백화점이었던 것이다. 

 

 

 

 

# 삼풍백화점 붕괴전 상황은 어떠하였나?

 

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비록 이미지는 고급을 추구했지만, 건물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했다. 사고 전 위험전조현상이 있었음에도 무시했다고 한다.

 

개점 직후부터 미세한 진동이 계속 느껴졌다고 한다. 

 

붕괴 2년 전, 삼풍문고라는 대형 서점을 유치했는데, 다량의 책으로 인한 하중의 증가로 균열은 급속히 늘어났다.

서점을 1년 2개월만에 철수시켰으나, 이미 건물의 구조를 담당하는 뼈대가 구부러진 상태가 되었다. 서점이 들어왔다고 건물 구조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즉, 부실공사라는 말이다.

 

붕괴 두 달전, 5층에 있는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생기고 바닥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결국 5층을 폐쇄하고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안전진단을 했다. 결과는 "건물의 붕괴위험이 있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별다른 조치없이 영업을 계속했다.

 

사고전날, 콘크리트 속에 박혀 있어야 되는 철근이 밖으로 뚫고 나왔다. 게다가 5층 음식점 일부는 아예 내려앉았다. 사고당일 아침에는 5층 식당가 기둥과 상판 사이에 무려 10cm 균열이 발견되었다.

 

천장에 균열이 발생하니 잔해물이 낙하하였고, 그제서야 식당을 폐쇄하고 귀중품 매장 판매품과 상품권 매장을 1층으로 이동시켰다. 그 상황에서도 식당가만을 닫고 계속 영업을 강행했다.

 

사고당일, 경영진은 5층 식당가의 상황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감리회사에 연락을 취하였다. 

 

붕괴 5시간전, 5층에서 큰 소음이 발생하였고, 소음의 원인이 옥상 에어컨의 진동때문에 균열이 가속화되면서 나는 소음임을 파악했다. 그 때, 취해진 조치는 어의없게도 그냥 에어컨 가동 중지뿐이었다.

 

붕괴 3시간전, 감리사 직원은 건물안전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영업을 중단하고 긴급보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으나, 이준 회장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붕괴 1시간전, 서서히 윗층부터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영업은 계속되었다. 

 

붕괴 17분전, 이준 회장은 건물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백화점을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백화점에서는 대피 방송을 하지 않았다.

 

붕괴 7분전, 건물에서 더 큰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직원들이 대피하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삼풍백화점은 무너졌다.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인한 피해규모

 

삼풍백화점은 지상 5층 건물이었다. 에어컨 실외기가 5층위로 떨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연쇄적으로 아래층까지 무너졌는데... 불과 20초만에 지하4층까지 모두 붕괴가 되었다. 

 

이미지출처. 노컷뉴스

 

 

사고로 1,500명의  사람이 그대로 매몰되었고, 최종적으로 사망자 502명, 부상자 973명, 실종자 6명 그리고 총 피해액 2,700여억원이 발생하게 되었다.

 

 

 

 

#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

 

1. 부실공사

 

당초 설계에 따르면 아파트 주민을 위한 종합상가였는데, 완공 전에 이준 회장이 용도를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4층이던 설계를 바꿔서 5층까지 올리게 되었다. 당초 시공사는 붕괴 위험을 이유로 요청을 거부했고... 결국 이준 회장은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으로 시공사를 변경하여 강행하였다.

 

설계 자체가 무량판구조로 설계된 삼풍백화점은 애시당초 고층을 감당할 수 없는 설계였다. 또한 내부공간 확장을 위해 기둥을 제거하고, 있는 기둥의 규격도 32인치에서 23인치로 줄여버렸다. 뿐 아니라 원가절감을 위해 부적합 철근을 사용하였다.

 

 

 

2. 대책없는 경영과 운영

 

경영진이 6년 동안 계속해서 건물 붕괴를 재촉한 셈이 되었다. 서점유치, 불법증축, 최고층부에 대형음식점을 설치함에 따른 관련 설비에 의한 하중증가, 여기에 바닥온돌난방시설을 설치하여 추가적인 하중 증가릉 가하였다.

 

마지막 정점을 찍는 것은... 옥상에 있었던 에어컨 냉각탑이었다. 3개의 냉각탑은 각각 87톤의 무게였고, 초기부터 진동이 생기고 물이 샜다고 한다.

 

 

 

3. 허점투성이 관리감독

 

처음부터 준공검사 없이 가사용 승인만 받고 개점을 했다. 준공승인을 받기 전에 개점을 했는데... 개점당시 4, 5층 공사가 진행중이었다고 한다. 

 

붕괴 8개월전(94년 10월), 기초 부분에 해당하는 지하 1층 구조변경 공사를 했는데, 이 때문에 11월에는 위법 건축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은 계속되었다. 

 

결국 해당 공무원들의 비리와 연결되어 삼풍백화점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 세월호 참사와 태국 학생들 구조 소식

 

이미지 출처. 뉴시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는 또 한번의 대형참사가 발생하였다. 배가 기울어져감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승객의 대비를 알리기는 커녕, 가장 먼저 하선을 한다. 영문도 모른채 젊은 영혼들은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아버렸다. 이준 회장의 비양심적인 윤리로 인해, 영문도 모른채 땅에 매몰되어야 했던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최근, 태국의 유소년 축구팀의 구조소식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코치선생님의 덕분으로 전원 무사히 구조가 되었다. 가장 훈훈했던 점은... 아이들을 모두 내보내고 자신이 가장 나중에 나와서 더욱 그의 행동에 감동을 느낀다. 

 

 

 

 

※나도 공학도이다. 사람의 직접적인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아니지만... 내가 만든 구조물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가지고 있다. 개인의 탐욕으로 비롯된 대형 참사이기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미 시공단계에서 위험의 신호는 이미 왔을 것이며, 운영중에도 감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남긴 대형참사가 발생하였다. 

 

공학도의 직업윤리, 사용자의 경영윤리... 나는 왜 오늘 이 단어가 머리속을 떠나질 않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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